DAY 09. 고강도 규제와 빅테크의 진격에 절박해진 카드사
우리가 카드를 긁으면 벌어지는 일
우리나라는 비현금 결제 비중이 세계 1위로 90%에 육박한다. 2위 중국의 비현금 결제 비중이 60%에 그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놀라운 수치다. 카드 가맹점 등록 비율도 100%에 가깝다. 2021년 기준 경제활동 인구 1인당 4.3장의 카드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카드는 우리에게 핵심적인 결제 수단이다.
카드사의 수익은 크게 신용판매 수수료와 현금대출 이자로 구성된다. 신용판매 수수료는 카드사가 회원과 가맹점 간 결제 프로세스에 참여하여 얻는 수익이다.고객이 신용카드로 가맹점의 상품을 결제하면, 카드사가 가맹점을 대신하여 고객에게 돈을 회수할 것을 책임진다. 이때 고객의 결제를 도운 대가로 카드사에 수수료를 제공한다. 그 수준은 보통 2% 안팎으로 가맹점의 매출 규모에 따라 상이하다.
과정을 자세히 알아보자. 철수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빼 카드 리더기에 긁는다. 카드를 긁는 순간 카드사는 VAN사(Value Added Network, 부가통신사업자)를 통해 카드정보와 유효기간, 철수가 10만원을 결제하려 한다는 정보를 받는다. VAN사는 가맹점과 카드사를 거래데이터로 연결해주는 회사로 현재 국내 21개사가 경쟁하고 있다. 카드 리더기 관리도 VAN사가 담당한다. VAN사는 각 지역별로 영업대리점을 두어 결제 단말기, 영수증 용지를 저렴하게 공급하겠다는 식의 마케팅으로 가맹점을 확보한다. VAN사는 가맹점에 결제 승인을 알린다. 일정 기간이 이후 카드사는 철수를 대신해 가맹점에 돈을 지급한다. 이때 10만원 전부를 주는 것이 아니다. 카드사는 신용카드를 통해 철수와 가맹점의 거래를 도운 대가로 2%에 해당하는 수수료 2000원을 가져간다. 소고깃집은 9만8천 원을 받는다. VAN사도 거래를 도운대가로 건당 150원의 수수료를 받는다. 이때 VAN사에게 수수료를 지불하는 주체는 가맹점이 아니라 카드사다. 결국 카드사는 10만원의 거래에 대해 1850원을 받아간다. 다음 달이 되면 철수는 카드사에 10만원을 납부한다. 결과적으로 가맹점에 갚아야 할 돈을 철수 대신 미리 내준 대가로 1850원을 벌었다. 카드사는 1개월간 가맹점에 신용을 제공하고 상품&서비스를 구매한 고객에 카드 대금을 갚지 못하는 리스크를 대신 부담한 것이다.
온라인 결제 프로세스의 핵심 플레이어 PG사
온라인에서는 중간에 PG사(Payment Gateway, 전자지급 결제대행)가 존재한다.
오프라인에서는 VAN사는 카드사와 가맹점 간 네트워크망을 구축하여 카드 거래 승인 등의 지급결제를 대행한다. 반면 PG사는 온라인에서 VAN사의 역할을 한다. 개인이 온라인 쇼핑몰을 개설할 경우 카드사와 일일이 계약을 맺고 결제 프로그램 연동등 처리해야 하는 일이 많다. PG사는 이런 일련의 번거로운 과정을 대행한다.
VAN사는 소비자가 카드로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놓아주고, PG사는 이것이 온라인에서도 가능하게끔 기술적인 지원을 한다. PG사는 VAN사와 달리 수수료를 카드사가 아닌 가맹점으로 부터 받는다.
소비자가 온라인상에서 결제하면 신용카드사 -> VAN사 -> PG사 -> 가맹점 순으로 결제 승인이 이루어진다. 가맹점이 PG사를 선택할 때 가장 크게 고려하는 것은 PG사로부터 대금을 안정적으로 회수할 수 있느냐이다. 이는 PG사 거래 규모에 비례한다. 따라서 구조적으로 PG 사업은 과점 형태를 띄기 쉽다. 실제로 국내 PG 시장 점유율을 보면 3사가 시장의 64%를 차지한다. 가맹점에 대금을 정산하기까지 시차가 있어 PG 사는 짧은 기간이나마 이자수익을 올릴 수 있다. 때문에 가맹점에 정산을 빨리해줄수록 수수료를 더 많이 부과하는 수수료 차등 구조를 두고 있다.
이후 PG사가 가맹점으로부터 일괄적으로 수수료를 수취해 결제 원천사에 가맹점 수수료를 지급한다. 가맹점으로부터 수수료를 받은 PG사는 자신의 몫을 제한 금액을 카드사에 지급한다. PG사가 2.3%의 수수료를 수취하고 신용카드사에 2%를 지급한다면 0.3%의 이윤이 남는다.
소액결제는 카드사의 적
카드사와 PG사가 거래액의 일정 퍼센트를 받는 데 반해, VAN사는 거래 건당 100~170원을 받는다. 그리고 이 금액은 카드사가 지급한다. 가령 카드사 수수료가 2%이고 VAN사가 거래 건당 100원을 받는다고 했을 때, 소비자가 카드로 5000원 이하의 상품을 구매한다고 해보자. 소액결제는 카드사 수익에 악영향을 미친다.
'10만원 이상 XX카드로 결제시 5% 할인'같은 카드사에서 일정 금액 이상을 구매했을 때 주는 혜택도 소액결제를 줄이고자 하는 의도로 기획된 이벤트다. 하지만 소액결제가 지속해서 증가함에 따라 2018년 금융당국에서는 VAN사 수수료를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전환하도록 했다. 덕분에 카드사는 부담이 덜었지만, VAN사의 이익률은 악화하였다.
할부의 경우 카드사가 몇 달에 걸쳐 가맹점에 빚을 지게 된다. 이 경우 카드사는 고객에게 돈을 빌려준 셈이 되기 때문에 그 대가로 고객에게 추가 수수료를 받는다. 보통 연간 수수료율 기준으로 10% 안팎의 고금리다. 물론 이따금 고객을 유인하기 위해 무이자 할부를 해주는 경우도 있다.
간편결제와의 전쟁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는 자영업자 표심을 공략하는 정치권의 단골 공약이다. 실제로 카드사의 가맹점 수수료는 2012년 3.6%에서 2021년 1.1%로 해를 거듭할수록 하락해왔다. 카드사의 수익성 악화가 우려돼 금융당국이 먼저 연회비를 넘어서는 혜택 제공을 금지한 전력이 있을 정도다.
금융당국은 "여신금융전문법"을 근거로 매우 구체적인 부분에 있어 카드사를 규제한다. 그러나 간편결제서비스는 규제 밖에 있다. 카드사는 빅테크와 카드사가 동일한 원칙을 적용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빅테크기업들은 가맹점에 결제서비스 외 부가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실제 실현되는 이익이 적다는 의견이다.
카드사의 역할은 결제 중개에 그치지만, 빅테크 결제 수수료에는 입점과 운영 비용까지 포함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배송 추적, 빠른 정산 지원 등의 서비스를 근거로 한다. 더불어 이들은 PG 서비스를 겸하기 때문에 같은 이익을 남기더라도 표면적으로 수취하는 수수료율이 카드사보다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PG사가 수수료를 일괄 수취하여 카드사 몫을 배분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간편결제사는 카드사와 달리 뒤에서 설명할 카드론서비스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표면상의 수수료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는 데 한계가 있다.
신용판매 수수료를 늘리기 위한 전략은 간단하다. 카드를 많이 발급하고, 그 카드를 많이 쓰게끔 하는 것이다. 따라서 카드사들은 카드 혜택 개발에 섬세한 노력을 기울인다. 카드 혜택을 받기 위해 실적을 정확히 맞춰 소비하고 카드사의 대출서비스를 전혀 이용하지 않는 고객이라면 카드사에 손해가 된다. 카드사 혜택을 적재적소에 뽑아내는 고객을 두고 '체리 피커'라 부르기도 한다.
네이버페이와 배달의민족을 통해 온라인으로 배달 주문 혹은 매장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처럼 결제는 온라인에서 하고 서비스는 오프라인을 통해 제공받는 형태를 O2O(Online to Offline)라 부른다. 과거에는 간편결제사들이 카드사와 협업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일정 이상의 충성 고객을 모집한 이후 카드사를 거치지 않고 자체 시스템상에서 결제를 유도하기 시작했다. 간편성과 앱과의 연계성으로 카드사의 많은 고객이 유출되고 있으며, 이는 전통 카드사들에게 커다란 위협이다.
꿩 대신 닭, 수신 대신 여신
현금대출 이자는 카드 회원에게 대출성 자금을 제공한 대가로 얻는 이자수익이다. 은행과 동일하게 대출상품을 통해 조달금리보다 높은 금리를 수취한다. 대출방식에 따라 크게 현금서비스와 카드론으로 나뉜다. 현금서비스는 급전이 필요한 사람에게 일정 한도 내에서 별도의 서류심사 없이 단기대출을, 카드론은 이용실적 등을 고려해 장기대출을 해주는 상품이다.
카드사의 대출 프로세스는 은행보다 빠르게 이루어진다. 방문, 보증, 서류 없이 쉽게 대출받을 수 있다. 게다가 카드론은 최대 36개월까지 상환기간을 조절할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고객이 최초로 카드를 발급받는 시점이 카드사에서 기본적인 심사를 마치고 이미 대출 한도가 부여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보통 카드사에서는 15% 안팎의 대출금리를 부과한다. 카드사는 저축은행과 달리 예금자를 따로 모집할 수 없어 수신 기능이 없지만 조달금리가 2%로 낮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신용카드의 경우 카드사에서 먼저 가맹점에 결제대금을 지급하고 이후에 고객에게 돈을 받는다. 심지어 현금서비스와 카드론을 통해 대출 장사까지 한다. 이는 카드사들이 수중에 상당한 양의 돈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카드사는 여신 기능이 없다. 즉 고객으로부터 자금을 조달받을 별다른 수단이 없는 것이다.
카드사의 자금 조달은 주로 회사채 발행이나 차입, ABS(Asset Backed Securities, 자산유동화증권) 발행으로 이루어진다. 회사채는 회사에서 일반 혹은 기관에게 돈을 빌리고 특정 시점에 원금과 함께 이자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한 증서다. 차입은 대개 주거래은행의 돈을 빌리는 것이다. ABS는 부동산과 같이 현금성, 유동성이 떨어지는 자산을 바탕으로 한 증권이다.
이를 통해 카드사는 2% 안팎의 이율로 자금을 조달한 후 15%의 대출금리를 부과하여 엄청난 차익을 거둔다. 신용판매 수수료는 적자가 나는 경우가 더러 있는 반면, 현금대출 이자수익은 마진이 상당하다. 카드사 본연의 업무라 할 수 있는 카드 발급 부문이 카드론 모집 찬구가 된 격이다. 그러나 카드론의 수요층은 보통 제1금융권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이다. 대출 이용자들의 신용도가 은행보다 낮아서 관리 당국이 규제의 칼을 자주 꺼낸다.
카드채 금리가 카드론 금리를 밀어낸다
21년에는 카드채(카드사 채권) 금리가 상승하면서 카드사로부터 자금을 빌리는 카드론 금리도 상승하고 있다. 금리가 상승함에 따라 카드론의 타깃 고객인 저신용자의 부도 위험이 증가했.
21년 기준 카드채는 카드사가 조달한 자금중 75%를 담당하는 핵심 창구다. 카드채의 금리 상승은 전반적인 조달금리를 높인다. 카드사는 그 부담을 해소하고자 카드론 금리를 올리는 식으로 대응한다.
코로나19 이후 카드사의 패러다임 변화
카드업은 전형적인 내수 산업이다. 정부의 규제가 심하다. 가맹점 수수료 인하 압박, 외형 확대 제한 등의 규제는 카드사 수익 급감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 20여 개 회사가 존재해 카드사 간 경쟁 강도도 높다. 하지만 카드사 설립을 위해서는 금융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진입장벽은 꽤 높다.
카드업은 현재 여러모로 위기에 있다. 2020년 기준 전체 민간소비 대비 신용카드 및 체크카드의 비중은 90%로 성장 여력이 점차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정부의 수수료 인하 압박과 시장경제 포화로 인해 수수료 수익 확대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핀테크의 등장으로 곧바로 은행계좌와 연동하여 결제하는 문화가 자리를 잡아 카드사가 개입할 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또한 카드업은 비즈니스 모델이나 카드 혜택의 차별화가 쉽지 않다. 때문에 과도한 마케팅비 지출로 평균적으로 순이익이 낮게 나타난다.
소비 위축으로 신용카드와 체크카드의 수익은 감소했지만 현금대출 부문 성장과 비용 절감이 두드러졌다. 경기가 하락하는 과정에서 은행권 대출이 어려운 소상공인과 저신용자들이 상대적으로 대출이 쉬운 카드론으로 눈을 돌렸다. 동시에 금융당국의 소상공인 대출만기 유예 조치로 카드사의 연체율 지표가 크게 개선되기도 했다.
PLCC(Private Label Credit Card, 상업자 표시 신용카드)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해졌다. 카드사들은 다수 브랜드와 협업하는 것은 물론, 카드 수수료 수익을 지키는 전략의 일환으로 핀테크업체와 PLCC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PLCC는 개별 상표를 부착한 카드라는 뜻으로 특정업체 브랜드를 사용하는 카드다. 일반 제휴카드의 경우 비용을 대부분 카드사가 떠안지만 PLCC는 카드사와 해당 제휴사가 비용을 분담하는 구조다. 대신 카드사는 연회비와 가맹점 수수료를 통한 수익을 분배해야 한다. 브랜드사는 PLCC를 통해 고객의 거주지, 연령 등 일반 제휴를 통해서 얻을 수 없었던 세부적인 결제 데이터를 열람할 수 있다.
현대카드는 카드사 중 PLCC에 가장 진심이다. 2021년 8월 기준 카드사가 발행상 PLCC가 총 464만 장인데, 이 중 410만 장을 현대카드가 발행했다.